HOME / NEWS블루윙즈 뉴스

상세

최성용, '자신 넘치는 폭주기관차'

2002.05.12 | VIEW : 9257

최성용, '자신 넘치는 폭주기관차'
 히딩크 감독은 한국선수들이 열심히는 하지만 가끔 열정이 지나칠 때가 있다고 자주 지적해왔다. 이러한 지적을 가장 많이 듣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최성용이다. 최성용은 스스로 이천수나 고종수 같은 재능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무조건 열심히 하라고 배웠고 열심히만 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열기에 빠지다 보니 진짜 뭔가 해야 될 때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 자신의 단점 중 하나라고 꼬집기도 한다.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최성용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열심히 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1990년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을 시작으로 1993년 세계 청소년(20세 이하)선수권대회, 96년 아틀란타 올림픽대표, 98년 월드컵 대표까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가 대표 명단에서 제외된 적은 없다. 화려하게 드러난 적은 없지만 언제나 강한 투지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키 플레이어의 발을 꽁꽁 묶는 ‘전담 마크맨’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쳐왔다. 또한 오른쪽 윙 백으로서 순간적인 공격가담에 의한 어시스트도 그가 가진 장기이다.

 '비쇼베츠 사단'의 일원이던 96 아틀란타 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 결승전에서는 당시 일본의 에이스 였던 마에조노를 꽁꽁 묶어 대회 우승을 이끌어냈고 그는 경기 MVP를 안았다. 올림픽 본선에서는 가나의 득점원 아코노르를 밀착마크 해 48년만에 올림픽 본선 첫 승에 기여했고 2000년 4월 한, 일전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던 나카타를 악착같이 따라 붙어 일본의 볼 배급을 완전히 차단, 이날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다.

 또한 99년 3월 브라질 전을 승리로 이끈 김도훈의 골도 그의 도움이었다. ‘플레이메이커 킬러’임과 동시에 힘있는 돌파와 결정적인 크로스를 선보이는 그는 언제나 대표팀에 보석과 같은 존재였다. 오죽하면 별명이 ‘폭주기관차'와 ‘최를로스’(브라질의 카를로스와 비슷하다고 해서)이겠는가?

 ‘지구력의 화신’이란 별명처럼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고,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 왔다고 해서 그가 모범생 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실 그에게는 편안한 길을 거부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가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그의 방랑벽이 시작된 것은 대학졸업과 동시였다. 고려대 재학시절에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실력을 키우던 그에게 신인 드래프트제도는 답답한 족쇄일 뿐이었다.

 96년도 드래프트 당시 새로 창단된 대전 시티즌에 지명 우선권이 있었고 최성용은 당연히 1순위 대상자였다. 월드컵을 위해서 갑자기 창단된 불안한 팀에 몇 년씩 묶여 있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 드래프트 제도는 너무도 불합리해 보였고, 해외진출도 어릴 때부터 꿈꾸던 욕심이었다. 그는 프로 행을 포기하고 상무로 입대해 버린다. 그는 군 시절의 대부분을 국가대표로서 보낸다. 98월드컵 예선과 본선경기로 국제무대에서 계속 경기를 하면서 경기감각을 잃지 않고 복무기간을 메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했지만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98년 월드컵은 그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본선 진출을 확정짓기 전까지는 많은 출장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성실한 훈련자세와 그라운드에서의 열의는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었고 아랍에미레이트와의 원정경기 이후부터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한다. 98년 월드컵 본선 세 경기는 그가 평생 선수생활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꼽는다. 그 만큼 국제 수준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하고 온 것이다.

 군 복무를 마친 최성용은 바로 일본행을 선택한다. 비록 아시아이긴 했지만, 한국에서 프로 경력이 전무한 그가 일단 해외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최성용은 99과 2000년 두 시즌 동안 빗셀 고배에서 51경기에 출전한다. 그는 일본에서 무엇보다 프로 선수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배우게 된다.

 최성용이 일본에서의 생활을 회고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과 프로문화의 차이다. 우리 프로구단에 장비 담당 직원이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표선수임에도 공을 직접 들고 다녔던 최성용은 2부 리그 선수들도 자기 장비 이외에는 들고 다니지 않는 일본의 프로 대접에 적지 않은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프로선수라는 이유 하나로 지역 주민들의 우상처럼 대접받는 인기 또한 부러웠다. ‘프로’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 분야 최고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강하게 각인된다.

 2001년 1월 빗셀고베는 구단이 감량 경영을 시작하면서 하석주와 최성용을 방출하게 된다. 당시 하석주는 국내 복귀를 원했고, 포항스틸러스에 돌아와 국내리그에 안착한다. 그러나 최성용은 아직 자신이 젊다고 생각했고,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은 꿈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독일로 떠난다. 독일 프로팀에서 입단 테스트도 받았다. 테스트 결과는 좋았지만, 여러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았다. 한 국가의 대표선수로서 입단 테스트를 받은 것 만해도 자존심은 굽힐 만큼 굽힌 것이다. 2001년 2월 좀 더 대접을 받으며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오스트리아로 라스크린츠팀과 입단계약을 체결한다.

 오스트리아가 조금 떨어지는 리그라고 하지만, 유럽리그에서 그의 적응 속도는 무서웠다. 최성용은 단 두경기 만에 데뷔 골을 터뜨린다. 그리고 계속된 경기에 최성용은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오스트리아 무대에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 더 있는 덩치 큰 유럽 선수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경기를 계속하다보니 최성용은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최성용이 유럽 생활에서 얻은 것은 그것, 자신감이었다. 함께 뛰어보니까 유럽 선수들에 비해서 우리 선수들이 밀리는 것은 언어와 전술이해도 정도였다. 우리도 제대로 배우기만 했다면 훨씬 잘 할 텐데....98년의 기억이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기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럽 아이들은 그 나이 때에 배울 것을 정확히 배우며 성장하는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이기는 법만 배웠고, 최성용 자신도 배운 대로 죽도록 열심히만 한 것이었다. 감독과 자연스럽게 의견을 주고받는 자유로운 축구문화 또한 그가 유럽에서 배운 것이었다. 원래 틀 속에 메이기 싫어하던 최성용이 또 한번 틀을 깬 것이다.

 그러나 최성용의 유럽생활은 길지 못했다. 라스크린츠는 다음 시즌 2부 리그로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시되었고, 더 이상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2부 리그에서 뛴다면 오스트리아에서 두각을 나타내 더 큰 리그로 나간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욕심은 남지만 과감하게 국내로 돌아오기로 한다. 국내 프로축구도 그 동안 많이 변해있었고, 최성용은 수원삼성에 입단하기로 결정을 했다. 28살 나이에 신인 아닌 신인으로 한국 프로리그에 데뷔를 한 것이다.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그는 여러 포지션을 옮기며 시험대에 올랐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오른쪽 측면은 물론 왼쪽 측면, 수비형 미드필더, 심지어는 공격수까지 참 많은 포지션을 소화하며 부상이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 전에서 황선홍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히딩크 감독 초기 '황태자' 같은 화려한 수식어는 없었지만 언제나 팀에서 한 몫을 하는 스타팅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이름을 스타팅에서 찾기가 쉽지 않아 졌다. 그의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주변 상황이 조금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히딩크 감독이 좋아하는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가 주로 서는 오른쪽 날개에는 '황태자' 송종국이 버티고 있고 수비형 미드필더에도 김남일이 무섭게 성장하여 버티고 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어 송종국이 자리를 옮기거나 스타팅 중 한 명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그 자리는 반드시 최성용의 몫이 될 것이다. 상대 팀 컬러가 어떠냐에 따라 최성용은 언제든 주전으로 기용될 준비가 되어있다. 최성용은 후보로 남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기량을 가지고 있다.

 최성용은 대표팀에서 노장도 아니고 '젊은 피'도 아닌 몇 안 되는 중 고참 선수다. 또 하나 그가 대표팀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광채를 내는 보석 최성용, 이제 그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하기 힘들다.

<개인 프로필>

포지션 : 미드필더
체격 : 173cm, 70kg
생년월일 : 1975. 12. 15
현 소속팀 : 수원삼성
전 소속팀 : 마산 합포초-마산 중앙중-마산공고-고려대-빗셀고베-라스크린츠-수원 삼성
A매치 경력 : 60경기 출장 / 1득점

스포탈 김효재 기자
스포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