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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월드컵 주역의 때가 왔다"

2002.05.22 | VIEW : 11466

이운재,
94년 6월 27일 댈러스의 코튼보울 경기장. 그라운드 온도가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한국은 전 대회 챔피언인 '전차 군단' 독일과 버거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클린스만과 리들레, 부흐발트의 파상 공세 앞에 한국은 전반에만 연이어 3골을 내주며 급속히 무너지고 있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컵에 참가한 베테랑 골키퍼 최인영은 어이없는 실수로 세 번째 골까지 내준 후 자신감마저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었다.

3-0은 김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출범한 이후 최대의 스코어차. 사람들은 모두 후반에 최인영 대신 세컨드 골키퍼인 박철우가 나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후반 시작과 더불어 최인영과 교체해 들어간 것은 놀랍게도 당시 경희대에 재학 중인 21살의 신예이자 청주상고 출신인 박철우의 새카만 후배인 이운재였다. 불과 3개월 전 미국과의 비공개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햇병아리' 가 월드컵 본선무대, 그것도 강호 독일과의 경기에 출전하는 하나의 '이변' 이 발생한 것이었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이운재가 들어온 가운데 한국은 후반 총공세를 펼치기 위해 수비 라인을 중앙선 근처까지 끌어올리는 극단적인 공격포메이션을 취했다. 그리고 후반 7분 독일의 킬패스에 한국 수비진이 단 한번에 무너지면서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이 이운재에게 오게 됐다.

수비수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가운데 25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골키퍼 이운재가 1대 1로 맞선 것은 '현대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라 불리는 게르만 폭격기 위르겐 클린스만. 이미 전반전에 두 골을 기록한 바 있는 클린스만은 해트트릭 완성과 이번 대회 자신이 목표로 한 득점왕 등극을 위해 한국 문전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스트라이커와 맞서서도 이운재는 21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침착했다. 클린스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운재는 페널티 박스를 굳게 지켰고 골키퍼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클린스만이 로빙슛을 날리자 이를 침착하게 그대로 잡은 것. 한국의 햇병아리 골키퍼가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는 짜릿한 장면이었다.

3-0에서 자칫 4-0이 될 뻔한 위기를 넘긴 한국은 이후 대공세를 펼쳐 황선홍과 홍명보의 연속골로 스코어차를 한 골차까지 줄였고 이운재는 후반 안정적인 경기운영으로 강호 독일을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축구팬들 앞에 확실히 알리게 되었다.

청주상고 출신이기는 하지만 사실 중학교 때까지의 포지션이 필드플레이였던 이운재가 골키퍼로 뛰기까지에는 하나의 일화가 전해져온다. 이운재가 활약할 당시 청주상고의 포지션 중 유독 골키퍼가 취약했었는데 어느날 연습 중에 실수한 골키퍼에게 그것도 못막냐고 핀잔을 주자 발끈한 골키퍼가 '너가 막아보지 그래' 라고 대꾸를 했다는 것. 이 말에 고집이라면 알아주던 이운재가 정말로 연습경기에 골키퍼로 뛰어 의외로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고 여기에 반한 코치가 그 뒤로 그의 포지션을 골키퍼로 바꾼 것이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94년 월드컵에서의 성공적인 데뷔와 함께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한국의 골문을 지켜오던 '거미손' 최인영이 은퇴를 함에 따라 국가대표팀 수문장의 자리는 당연히 이운재에게 돌아오는 듯 했다. 아울러 대학 졸업과 함께 창단팀인 신생팀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게 되면서 그 동안 소속팀에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들러리' 에 만족해야만 했던 이운재에게도 새 시대가 끝나는 듯 했다.

사실 이운재 만큼 정상급의 기량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에서 늘 2인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던 경우도 드물다. 일찍이 젊은 나이에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멤버로 발탁되었지만 2살이 많은 신범철에게 밀려야 했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팀에서도 동기생 서동명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장신을 선호하는 비쇼배츠 감독의 취향 때문에 최종예선에서 후보로 밀렸던 그에게는 오랫동안 2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본격적으로 비상하려던 이운재에게 96년 5월 또다시 청천 벽력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간염 판단을 받은 것이다. 최종예선의 아쉬움을 올림픽 본선에서 씻겠다는 꿈도 물거품이 된 채 이운재는 후보명단에서도 제외되며 동료들이 미국에서 본선 시합을 벌이는 반년동안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줄곧 병상에서 지낸 것은 아니지만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고 어느덧 소속팀인 수원의 골문도 청주상고 대선배인 박철우에게 자주 내주다보니 기량은 자꾸 줄어드는 것 같아 선수생활을 접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운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유의 끈기로 2년이라는 지긋지긋한 세월동안 병마와 싸운 끝에 마침내 98년부터 다시 축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2년간의 병원생활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많았다. 지금은 침착함의 화신으로 꼽히는 그이지만 사실 대학 재학시절에는 가장 큰 약점으로 침착함이 부족하다는 것이 지적되던 그가 오랜 병원생활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고 자신감을 잃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에서 밀려난 것은 이운재에게 씻을 수 없는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 90년대 중반 한국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골키퍼가 꼽히던 사이 어느 새 김병지가 톡톡 튀는 개성과 순발력을 앞세워 골문을 지키고 있었고 후보 자리조차 동기생인 서동명이 차지하면서 98년 월드컵에는 후보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한 이운재는 특유의 성실함과 고집으로 꾸준히 훈련을 계속하면서 기량을 회복해 갔고 소속팀인 수원에서 차차 예전의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98년 수원의 첫 K리그 우승과 1999년 대회 전관왕이라는 위업은 포백라인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이운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2000년 이운재가 상무에 입대하자마자 같은 해 수원이 곧바로 정규리그 5위로 주저앉은 것도 기복이 없는 그의 플레이가 팀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보여주는 보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성실한 플레이를 보여주던 이운재는 2000년 1월 부임한 거스 히딩크감독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칼스버그컵에서 라이벌 김병지가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면서 주전 자리를 꿰차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한국의 문전을 지키기도 했다.

2001년 11월 26일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오랫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던 김병지가 다시 복귀하면서 이운재는 월드컵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고 다시 한번 자신을 시험하는 치열한 도전에 임하고 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팀에서 서동명과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이다 밀려나고 병마로 완전히 낙마한 아픔이 98년 월드컵 탈락까지 이어졌던 그에게 이번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전은 그간의 아픔을 만회할 무엇보다 큰 기회이기 때문.

최근 이운재를 만나본 사람들은 핼쓱하리만큼 여윈 얼굴에 날렵한 몸매로 변신한 그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상무에 있을 당시 씨름 선수 비슷한 몸매를 가지고 있던 이운재의 이러한 변신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훈련에 전념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병지와의 주전 경쟁을 묻는 인터뷰에서 늘 입버릇처럼 "최선을 다해 주전 골키퍼가 되겠다. 그러나 주전이 되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겠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고 다짐하는 이운재. 그러나 병마를 딛고 오똑이처럼 다시 일어선 그가 이번 월드컵 주전 골키퍼의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을 충분한 자격과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의심하는 축구팬들은 없을 것이다.

출생일 : 73년 4월 26일(충북 청주)
체격 : 182㎝, 82㎏
출신교 : 청남초-대성중-청주상고-경희대-수원 삼성-상무-수원 삼성
A매치 데뷔 : 94년 3월 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
A매치 경력 : 31경기 / 34실점
주요경력 :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본선, 94년 미국월드컵 본선,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예선, 2000년 북중미 골드컵, 2000년 아시안컵,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2002년 북중미골드컵대회
스포탈 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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